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포장의 기쁨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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포장의 기쁨
어떤 친구로부터 배웠다. 친구가 ‘이 물건에는 이런 포장지를 써봐. 리본은 이렇게 묶고, 스티커는 이런 종류를 써’ 하며 포장 법을 전수한 것은 아니었다. 배움은 그녀가 선물을 줄 때마다 생겨났다. 그녀가 준 것에 붙은 테이프를 떼어내면서, 종이를 뜯으면서, 편지를 읽으면서 머리가 찌릿해짐을 느꼈다. 단정하거나 각이 또렷한 포장이 아니었다. 구겨져있거나 흐물거리는 모양새였고 그게 아름다웠다. 나는 어렴풋이 알게 됐다. 어딘가 투박한 듯 작은 것들이 내게 큰 기쁨을 주는구나. 그녀의 기운이 은은하게 전달됐다.

그녀가 옆으로 건네준 감정을 나도 다른 이들에게 나눠보고 싶었다. 그쯤에 나는 슬며시 무언가를 안 버리고 모으기 시작했다. 포장지와 끈이었다. 테이프를 떼다가 종이에 구멍이 났든, 길이가 어떻든 일단 모았다. 쌓인 것들을 보면 어쩐지 마음이 든든했다. 포장할 물건은 서로에게 부담 없는 작은 것일수록 더 좋았다. ‘별거 아니지만’ 그런 말속에 마음이 더 들어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. 바깥에서 사 온 물건이 멋있게 포장되어 있어도 꼭 그 위에 뭔가를 내 손으로 더하려는 욕심이 늘어났다. 포장만 해주는 가게를 만들면 어떨까 상상해 봤지만 금방 휘휘 저었다. 대가를 받으면 어쩐지 정갈하고 딱 맞는 포장을 해야 할 거 같았다.

내 포장법 또한 엉성한 게 매력이었다. 삐뚤고 헐렁한 모양. 그저 마음을 담아 선물할 날이 왔을 때 모아뒀던 포장지를 꺼내면 될 일이다. 친구들에게 작은 마음을 표현하기 좋은 계절이 왔다. 마음과는 별개로 미루기가 특기인 내가 올해는 포장의 기쁨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. 꼭 그랬으면.









 이진희
 일상 에세이 작가 

하고 싶은 말과 해야 하는 말 모두를 잘 하고 싶은 사람. 좋아하는 것은 시장 구경, 싫어하는 것은 못난 태도라는 그녀는 지은 책으로 '손톱을 물어 뜯는 이유'가 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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